마녀 배달부 키키 ; 魔女の宅急便 ; Kiki's Delivery Service (2)


일본 1989년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성우) : 타카야마 미나미(키키&우르슬라), 사쿠마 레이(지지), 토다 케이코(오소노), 야마구치 갓페이(톰보)


  집 나간 키키는 잘 먹고 잘 산다?! (1)


평등과 자유, 그리고 주체성이라는 주제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키키에게 두 가지 좌절을 경험시킨다. 이 작품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키키라는 마녀가 홀로서기 위해서 경험하게 되는 좌절로부터 어떻게 회복하고, 또한 성장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키키가 경험한 첫번째 좌절은 집을 떠난 후에 일기예보와는 달리 내린 비나 막 코르코에 도착하였을 때에 겪는 주민들의 차가운 반응 등도 들 수 있지만,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배달 도중에 봉제 인형을 숲 속에 떨어트려서 잃어 버린 것이다. 배달을 하다가 보면, 이런저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기에, 사실 이 첫 번째 좌절이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스크린 속에서는 매우 큰 일이다. 자신이 맡은 첫 번째 임무 - 혹은, 업무를 완전히 망치게 된 키키는 이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키키가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타인으로부터의 도움이었다. 숲 속에 떨어진 봉제 인형을 주워준 우르슬라가 찢어진 봉제 인형을 고쳐 주었기에, 닮았다는 이유로 졸지에 인형이 된 지지와 봉제 인형을 바꿀 수 있었다. 게다가, 봉제 인형을 닮은 지지의 도움으로 시간을 벌 수 있었다던지, 지지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제프라는 개가 도와주기도 한다. 즉, 키키의 홀로서기는 타자 他者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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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도움은 단순히 이 사건만이 아니다. 비를 피해서 들어간 화물 열차에서 소들의 먹이인 건초더미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던지, 경찰의 조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톰보 덕분이었고, 오소노의 호의로 빵가게의 방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는 등 집으로부터 독립한 키키의 자립은 타자들의 도움으로 시작되고, 또한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키키가 경험하게 되는 번째 좌절은 첫 번째와는 완전히 정반대이다. 키키는 손녀에게 자신이 만든 파이를 배달해 달라는 어느 노부인의 의뢰를 받는다. 오븐의 고장 등으로 부두막에서 파이를 굽는 것을 돕고, 어쨋든 파이를 만들어서, 손녀에게 배달을 간다. 하지만, 비까지 맞으면서 키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손녀의 냉담한 말이었다.

손녀 : 어떻게 오셨죠?

키키 : 배달왔어요.

손녀 : 어머, 흠뻑 젖었잖아.

키키 : 비가 갑자기 내려서 그래요. 하지만 음식은 괜찮아요.

손녀 : 그래서 필요없다고 한 건데.

안에서 : 무슨 일이야?

손녀 : 할머니가 또 청어 파이를 보냈어.

키키 : 아, 영수증에 싸인 해 주세요.

손녀 : 이 파이 싫어해요.


톰보와의 약속(비행클럽의 파티의 초대) 시간도 희생하면서까지 키키가 노부인이 파이를 만드는 것을 도와준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받은 타자의 호의를 보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타자의 도움을 또 다른 타자에게 돌려주려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냉담함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그 손녀가 비행클럽의 일원인 것을 알게 되면서, 키키는 마법을 잃어 버린다.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자립에 나선 키키가 그 믿음이 완전히 배반당하면서, 좌절을 경험한다. 타자를 믿을 수 없게 된 키키는 자신의 아이덴티티 - 정체성을 잃게 되고, 또한 거의 자기 부정을 하게 된다. 결국, 마녀로서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회의를 가진 키키는 더 이상 지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관계에 빠지면서, 고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르슬라와의 재회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마녀의 상징인 [마법]은 돌아오지 않는다(우르슬라와 키키는 성우인 카타야마 미나미가 1인 2역을 담당하였기에, 두 사람의 관계를 패러렐 Parallel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은 카타야마 미나미가 두 사람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적당한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품 속의 두 사람은 분명히 패러렐적인 관계라고 말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원래는 우르슬라와의 만남을 통해서 키키의 마법이 회복되는 것으로 원안을 잡고 있었을 정도이다.). 그런 키키가 마법을 되찾게 된 것은 위기에 빠진 톰보와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카라디오 : 비행선의 헬륨은 불연성입니다. 시민 여러분, 당황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행동해주시기 바랍니다.

키키 : (차안의 사람에게) 톰보는, 남자애는 무사하대요!?

남자 : 글쎄, 경찰차는 떨어졌다고 하던데.

소방차 : 비켜주세요! 길을 열어 주세요! 빨리 비켜주세요!!

청소부 : (가로등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는 키키를 보고) 괜찮니?

(키키, 청소부를 쳐다보다가 들고 있는 빗자루에 눈이 간다)

키키 : 아저씨, 그 빗자루 좀 빌려 주셔요!

청소부 : 뭐?

키키 : 부탁이예요! 꼭 돌려드릴게요!!

청소부 : 어어, 그건 뭐 ...

키키 : 죄송해요!! (빗자루를 낚아챈다)

(빗자루에 앉아 온 정신을  집중시키는 키키.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한다. 이윽고, 바람이 불고 빗자루가 힘을 받기 시작한다.)

키키 : 날아 !!

(바람을 일으키며 빗자루가 하늘로 붕 떠오른다)

사람들 : 우와아!! 떴다 !!

(빗자루가 좌충우돌, 똑바로 날질 않는다)

키키 : 똑바로 날아, 안그럼 아궁이에 처넣을 꺼야!!

키키가 톰보를 구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은 이전까지 사용하던 마녀 전용(?) 빗자루가 아닌 청소부(타자)의 빗자루였다. 이것은 키키가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상대가 자신의 호의를 받아들이던지 아니던지와는 관계없이 상대를 도와주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이 말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을 믿겠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키키는 타자의 반응을 기대하고 행동을 했다면, 앞으로는 타자에게 주는 것을 전제로 행동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키키는 좌절을 통해서 정신적 성장을 한 것이다. 보호받고 있던 아이에서 스스로 누군가에 도움이 되는 어른으로 키키는 성장한 것이다. 게다가, 청소부의 빗자루로 톰보에게 도움이 된다는 전제에서 본다면, 정반합을 이루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또한 그 공동체를 위해서 서로 협력해야만 한다는 것을 키키는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마녀 우편배달부 키키]의 히로인을 보면서,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가? 뭐, 무인도에서 살다가 나온 것도 아니고, 키키가 경험하게 되는 좌절이라는 것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을 ... ... 즉, 인간 관계를 지금까지 한번도 가지지 않은 아이처럼 13살이라는 키키는 너무 유치할 정도로 순백하다. 갓 태어난 아이와 같은 정신 연령을 가진 소녀가 키키라고 할 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순진함이나 순수함을 추구해서, 보고 있으면 [이뭐병]이라는 말이 수시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왜 미야자키 하야오는 키키를 나이 이상으로 순백의 정신을 가진 소녀로 그린 것일까?

앞선 글에서 작품에도 원작 소설이 있고, 그 원작을 바탕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만의 세계를 그렸다고 했다. 이 말은 원작과 애니메는 당연히 설정이나 여러 부분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원작과 다른 부분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고,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부분들을 통해서 환타지적인 동화의 세계라는 영상에 숨겨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읽어 보도록 하자. 이 작품이 동화적이고 아름답다는 풀 뜯는 소리는 제발 닥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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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나 원작이나 키키가 13살이 되어서, 마녀 수행을 위해서 집을 떠난다. 하지만, 애니메에서는 마녀라면 누구나 13살이 되면, 1년간 수행을 떠나야만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수행을 떠날지 여부는 본인의 선택 사항이다. 게다가, 애니메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키키는 마녀였지만, 원작에서는 10살이 되었을 때에 자신이 마녀로 살 것인지 아니면, 인간으로 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고, 마녀를 선택한 아이만 3년간 마법을 배우고 있다. 즉, 원작에서의 마녀는 선택 사항이고, 또한 집을 떠나서 독립하는 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다. 이 선택 사항들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1년간 수행에 나서는 마녀 후보생에게 1년간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이 주어지지만, 영화에서는 구체적인 금액이 나오지는 않지만, 당장의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용돈 정도의 돈이 주어질 뿐이다. 즉, 원작에서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1년간 생활할 수 있는 목돈을 가지고, 수행을 떠나지만, 영화에서는 거의 무일푼으로 집에서 독립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설정의 차이가 있지만, 원작이나 애니메나 둘다 소녀의 자립을 테머로 그리고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테머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자아를 자각]하는 것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집이나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자아의 자각, 영화의 내용 등을 보면서, 누군가의 글이 떠오르지 않는가? 내가 정한 제목에서 이미 눈치를 챈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맞다. 이 작품은 바로 루쉰의 [노라는 집을 나간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식의 답변이다.

즉, 루쉰의 [집 나간 노라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에 이 작품을 대비시키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다.

루쉰의 노라


키키는 좁은 시골이 아닌 대도시 - 넓은 사회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수행을 떠나는 키키가 지지와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은 아버지의 라디오이다. 라디오는 세계이다.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세계와 그 바깥에 존재하는 넓은 세계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있다. 즉, 키키는 완전한 독립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엄마 : 너 그 빗자루로 갈 거니?

키키 : 응. 새로 만들었어요. 귀엽죠?

엄마 : 안돼, 그런 작은 빗자루론. 엄마 빗자루를 갖고 가라.

키키 : 싫어요, 그런 낡아빠진 건.

엄마 : 그래서 좋은 거야. 길이 잘 들어서 폭풍에도 끄떡없이 날거든.

키키 : 일부러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그치, 지지?

지지 : 나도 어머니의 빗자루가 나을 거라고 생각해.

키키 : 배신자!!

토라 : 키키, 마을에서 사는 게 익숙해지면 자기 걸 만들면 되지 않겠니?

키키 : 웅…….

엄마 : 조심해라.

아빠 : 정신 똑바로 차리고.

키키가 수행을 떠나는 장면에서 자신의 빗자루로 떠나려고 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키키는 지금 떠나는 수행을 가족으로부터, 혹은 구체제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만든 빗자루로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키키의 엄마나 마을 주민들은 키키에게 엄마가 쓰던 빗자루를 가지고 가라고 한다. 이것은 역사란, 완전히 새롭게 쓰여지는 미래의 산물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키키가 바라는 완전한 독립은 모든 과거에 대한 부정을 통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키키와 미래의 키키는 키키의 어머니를 포함한 과거의 역사를 잇는다는 단절이 아닌 역사의 연속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루쉰의 노라


집을 떠나서 자립에 나선 이상 키키는 돌아갈 곳이 없다.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일이 잘 풀리거든 돌아와도 된단다]라고 말했지만, 마녀가 될 키키는 자신이 생활할 새로운 마을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곳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버지의 말은 최악의 경우에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어리게만 느껴지는 아이가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에 따른 걱정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마녀의 정착이라는 것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3살이 된 마녀의 후예는 독립하기 위해서 자신이 정착할 마을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자신이 정착하기로 결심한 마을에는 다른 마녀가 없어야만 한다. 이 말은 선배 마녀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고, 자신의 자리를 개척해야만 한다. 마을이 마녀에 대해서 배타적일 수도 있다. 그 마녀에 대한 터부를 이기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즉, 마녀의 독립은 단순히 집으로부터의 분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개척이라고 할 있다.

키키 역시 코르코라는 도시에 안주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이 도시에 도착해서 만난 경찰이나 호텔의 프런트 직원, 주민들로부터 차별 - 혹은, 터부를 느낀 키키는 낙담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빵집의 여주인인 오소노를 만나면서, 일단 이 마을에 머물기로 한다. 위의 키키가 경험하게 되는 첫 번째 좌절의 중과부언이 되지만, 키키는 타인의 도움(동정 등을 포함해서)으로 자신의 독립을 시작한다. 하지만, 루쉰이 말한 것처럼 노라가 타인의 동정이나 배려 등으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동시에 예외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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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일이다.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이 필요하다. 마녀라고 해서, 매일 풀이나 뜯거나 고상하게 이슬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먹어야만 한다. 최소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식료품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두꺼비 알이니 뭐니 하는 것을 넣는 식의 마법으로 돈을 만들 수도 없다. 오로지 돈은 자신의 땀을 흘려서 벌어야만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위의 동정이라던지 호의 등과 같은 것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두 번째 좌절이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주위로부터의 도움으로 독립을 할 수 있었던 키키가 도움을 주위(사회)로 되돌렸을 때에 돌아온 것은 거절이었다. 게다가, 그의 호의를 냉담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절한 것은 남성이 아닌 자신과 같은 소녀였기에, 키키의 상처는 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버해서 역시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개가 풀을 뜯는 확대 해석은 금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에는 여러가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남성이던 여성이던 ... ... 오히려 같은 또래의 소녀로부터의 상처를 통해서 소녀가 한 사람의 여성으로 자립하기에는 사회는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키키가 만나게 되는 경찰이나 호텔 프런트의 직원 등은 단순히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회의 제도나 인식 등이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려는 여성에게 얼마나 일상적으로 차별이나 제한 등이 가해지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동정이나 배려, 호의 등은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고, 진정으로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라는 것이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충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집에서 독립한 키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거나 창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 ... 사회적 시스템이 친여성적 - 좀 더 넓게 본다면, 친인간적이어야 한다. 인간이 있고, 사회가 있는 것이다. 그 반대인 사회가 있고 인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 사회인 것이다.

루쉰의 노라


영화와는 관계없지만, 위의 루쉰의 말은 이제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도 없이 사용되고 있는 [된장녀]라는 단어에도 적용된다. [된장녀] 논란에서 재미있는 것은 - 그 시작은 차제에 두고서 - 여성에게 특별한 존재로 것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허영, 혹은 이미지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남자나 여자라는 구별은 무의미하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한 어쩔 수 없이 누구라도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된장녀에 대한 이야기는 노OO의 결혼 소식으로 끝없이 확장되었다.

루쉰의 말처럼 나나 너나 우리는 구경꾼일 수밖에 없다. 노OO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노OO이 집안의 인형에 안주하던, 아니면 집을 나가서 독립하던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개인의 선택을 놓고서, 구경꾼들이 왈가불가하는 것은 루쉰의 말대로 양가죽 벗기는 것을 즐기는 부류일 뿐이다. 그렇게도 노OO의 희생을 바란다면,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나 제도를 바꾸면 된다. 여성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사회,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 - 결국, 집을 나간 노라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거나 창녀가 되거나 죽거나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어느 누군가에게 순교자가 될 것을 강요할 권리 따위는 누구에게도 없다.

또한, 현실에서 키키와 같이 사회적으로 독립하려는 여성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경우는 정말 극소수일 뿐이다. 기껏 그런 여성이 나오면, 꼴페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아우성만 넘쳐난다. 결국, 어떤 여성이 노OO이 되던 키키가 되던 양가죽 벗기는 것을 유쾌하게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흥미꺼리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오히려 된장녀라는 존재는 흔히들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컴플렉스로 말해지는 능력 컴플렉스와 허세 컴플렉스에 성 컴플렉스와 지적 컴플렉스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젠더적인 측면 -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계급적인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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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영화로 돌아가서,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는 13살의 어린 소녀에게 지나친 과업을 부여한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키키를 냉혹한 환경으로 내몰고 있다. 당장의 생활을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하고, 게다가 키키는 특별한 존재도 아니다. 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특기(?)는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재주도 때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도 없다. 하지만, 숙명에 의해서 키키는 혼자 힘으로 독립된 생활을 꾸려나가야만 한다. 이것은 키키가 하기 싫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키키가 원한 것도 아니다. 숙명이다. 마녀로서의 당위이다. 여성이 독립하는 것은 자연적이고 당연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마녀 배달부 키키]에 등장하는 사회는 외면상 거의 남녀 평등적인 사회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듯이 여성이 주도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마녀는 아버지의 피가 아닌 어머니의 혈통에 따른 것이다. 또한, 키키가 머무르게 되는 빵집도 오소노에게 전권이 있다. 오소노의 남편은 단지 빵을 구울 뿐이다. 빵집과 관련된 결정은 - 영화상으로는 - 오로지 오소노가 결정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키키가 마법을 되살리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우르슬라와의 대화에 이은 노부인의 마음 덕분이었다.

노부인 : 소리 좀 줄여요. 키키, 이 상자 좀 열어줄래?

키키 : 예. 할머니, 이건 !!

(상자안에는 키키의 실루엣이 그려진 케익이 담겨있다)

노부인 : 그걸 키키라는 사람한테 전해줬으면  좋겠어. 요전번에 무척 폐를 끼쳤거든. 그 답례란다. 덧붙여서 그  애의 생일도 알아와 준다면 고맙겠는데. 또 케이크를 구울 수 있지 않겠니? 키키?

(키키, 멍하니 서있다가 눈을 훔친다. 그리고 갑자기 돌아서며)

키키 : 꼭, 그 애도 할머니의  생신을 알고 싶어할 거예요! 선물을 고민하는 즐거움이 생기니까요!

노부인 : 그렇네.

자신의 호의가 배신당했다고만 생각하고 있던 키키에게 노부인의 답례로, 그의 호의는 타인에게도 받아들여진 것이다. 남으로부터 받던 키키가 남에게 주는 키키, 또한 그 호의에 대한 남으로부터의 응답으로 키키는 완전한 인간이 된 것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 등장하는 여성들인 키키와 오소노, 우르슬라, 그리고 노부인 - 즉, 소녀와 성인인 여성, 그리고 노파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상이다. 그리고, "순진무구한 소녀가 의지력이 강한 성인인 여성에게 지탱되고, 또한 현명한 노파가 이끈다."는 정형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즉,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등장하는 순수한 소녀들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오로지 정면으로 고난을 넘어서려고 한다. 그러한 소녀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혹은 격려하는 것은 언제나 소녀보다 나이가 많은 성인 여성 - 아줌마이거나 언니이다. 그리고, 항상 노파들은 소녀에게 친절하고, 또한 결정적인 위기에서 도움을 주거나,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거나 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부모라는 존재는 주인공인 소녀에게 존재 가치가 거의 없다. 단지, 소녀와 아줌마, 노파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순진한 소녀가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하고,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늙어가는] 여자의 일생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미야자키 하야오가 부모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그의 배경과 관련이 있다. 문제는 후에 그에 대한 총괄적인 글에서 이야기할 생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하늘을 난다는 것이다. 이 애니메에서는 마녀인 키키가 수 있는 유일한 특기 - 마녀의 당연한 특색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하늘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난다]는 것은 대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 대지를 벗어나서 하늘을 난다는 의미와 함께 시점의 변화도 포함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서 대부분의 시점은 카메라를 한 곳에 고정시킨 채 횡적인 이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 세로의 세계에 하늘을 나는 것으로 가로의 세계를 추가하는 것으로, 다이나믹함이나 속이 뚫리는 것과 같은 시원함을 준다. 그리고,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중력의 법칙을 넘어서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는 갖가지 규칙이나 관습들이 있다. 이 규칙이나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이 하늘을 나는 인간인 것이다.

결국 인간을 옭아매는 제도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키키이다. 그리고, 키키는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집을 나가면 ... 잘 먹고 잘 산다고 ... ... 때로는 곤란도 있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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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할 때도 있지만, 저는 건강합니다.